이 글은 경찰로부터 피의자 출석 요구를 받고 변호인과 첫 상담을 앞둔 사람이 진술거부권을 전부 행사할지, 일부 질문에만 행사할지, 아니면 모두 진술할지를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행사하면 유리한 사정을 소명할 기회도 함께 놓칠 수 있으므로, 행사 범위는 질문 단위로 나누어 변호인과 미리 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적용 범위는 경찰 단계의 피의자신문이며, 참고인으로 출석했다가 피의자로 전환되는 경우에도 같은 기준으로 검토할 수 있습니다.
Ⅰ. 쟁점의 소재
출석 일시와 사건 번호 확인, 사건 경위의 시간순 정리, 문자메시지·통화 기록 같은 객관적 자료 확보처럼 경찰조사를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일반 항목은 이미 여러 안내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출석 전 변호인 상담에서 실제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어느 질문에 답하고 어느 질문에는 답하지 않을지, 그리고 그 선택을 조사실에서 어떻게 표현할지를 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대개 "진술거부권이 있다"는 설명에서 그치고, 행사 범위를 정하는 기준은 따로 다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피의자신문조서가 가지는 무게에 있습니다. 피의자신문조서는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진술의 일관성, 쟁점 형성, 증거능력 판단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수사관의 유도 질문이나 압박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면 나중에 번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은 진술 외의 객관적 증거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 첫 진술의 내용과 태도가 수사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모두 말한다"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두 극단 사이에서 질문별로 판단하는 기준을 미리 세워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Ⅱ. 관련 법령과 기준
피의자에게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 진술거부권이 보장됩니다. 수사기관은 신문 전에 진술거부권을 고지해야 하며, 피의자는 특정 질문에 대해서만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고 전체 질문에 대해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진술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므로, 이를 행사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참고인으로 출석했더라도 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 수사관은 진술거부권 등을 다시 고지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에 따라 피의자는 신문을 받을 때 변호인의 참여를 요구할 수 있고, 수사기관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동석한 변호인은 부당한 신문 방법에 즉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신문이 끝난 뒤 의견을 진술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변호인이 신문 중에 피의자 대신 답변하거나 신문을 방해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이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도 법률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질문마다 답할지 말지를 정하는 주체는 피의자 본인이므로, 그 기준은 조사실에 들어가기 전에 정해 두어야 합니다.
신문이 끝나면 수사관은 조서를 피의자에게 열람하게 하거나 읽어 주어야 합니다. 피의자는 자신의 진술과 다르게 기재된 부분의 정정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조서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을 거부할 수도 있으며, 이 경우 수사관이 그 사유를 조서에 기재하게 됩니다. 서명 거부 자체는 법적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안에 따라 영상녹화가 이루어질 수 있고, 피의자는 영상녹화 여부를 고지받게 됩니다. 수사 절차와 피의자 권리에 관한 일반 안내는 법무부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적용은 사건 시점의 법령을 기준으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Ⅲ. 해석: 세 가지 선택지의 비교
위 기준을 종합하면 피의자가 고를 수 있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아래 비교는 자료에서 확인되는 법적 효과와 한계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사건별로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므로 일반적인 정답은 없습니다.
- 전부 진술: 유리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소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기억이 불분명하거나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질문까지 답하게 되어, 추측성 답변이 조서에 남을 위험이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객관적 자료로 충분히 뒷받침되는 경우에 검토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 일부 질문만 거부: 자료로 뒷받침되는 부분은 진술하여 소명 기회를 살리고, 해석의 여지가 큰 질문은 거부하여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거부할 질문의 범위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면 조사실에서 즉흥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진술의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 전부 거부: 행사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줄 수 없고, 조서에 불리한 진술이 남을 여지도 줄어듭니다. 그러나 유리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소명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료에서도 변호인과 상의하여 행사 범위를 정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일부 거부를 택할 때 질문을 나누는 기준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 사실을 문자메시지, 통화 기록, CCTV, 동행인의 진술 같은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할 수 있는지 봅니다. 둘째, 본인의 기억이 분명한지 봅니다. 셋째, 같은 답변이 문맥에 따라 불리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 봅니다. 세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질문은 진술 쪽으로, 어느 하나라도 불확실한 질문은 변호인과 따로 검토하는 쪽으로 분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됩니다.
여기서 구별할 점이 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하는 것은 진술거부와 다릅니다. 이는 사실에 관한 진술의 하나입니다. 자료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을 추측으로 답하기보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히는 편이 오히려 진술의 신빙성을 높인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기억이 없는 질문까지 진술거부로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억나지 않음"과 "진술 거부"를 서로 다른 항목으로 나누어 준비하는 것이 조서의 정확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Ⅳ. 실무상 유의점: 상담 전 준비 목록
행사 범위를 상담 자리에서 효율적으로 정하려면 피의자가 미리 정리해 갈 내용이 있습니다. 아래 목록은 자료에 나타난 절차와 권리를 출석 전 준비 단계에 맞추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 예상 질문을 "자료로 뒷받침되는 사실", "기억이 불분명한 사실", "해석에 따라 불리할 수 있는 사실"의 세 칸으로 나누어 적어 갑니다.
- 각 칸의 질문에 대해 진술, 기억나지 않음, 진술 거부 가운데 무엇으로 대응할지를 변호인과 미리 합의합니다.
- 같은 쟁점에 속한 질문은 묶어서 결정합니다. 앞의 질문에는 답하고 이어지는 질문만 거부하면 조서상 맥락이 어색해질 수 있습니다.
- 변호인 동석을 원하면 출석 전에 수사관에게 미리 알립니다. 이렇게 하면 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진술을 거부할 때도 감정적으로 흥분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차분하게 의사를 밝힙니다. 영상녹화물은 진술 과정과 조사 방식을 확인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으므로 태도와 표현에도 유의합니다.
- 참고인으로 출석한 경우, 피의자 전환 시 진술거부권 재고지가 있었는지와 변호인 참여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 조서 열람 단계에서 거부한 질문과 진술한 질문이 정확히 구분되어 기재되었는지 확인합니다. 정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사실을 조서에 기재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유사 사건의 결과를 참고하여 행사 범위를 정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개된 판결서 등 사법정보는 사법정보공개포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 사건의 결과는 사건 시점의 법령, 당사자의 신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다른 사건의 결론을 근거로 본인 사건의 행사 범위를 단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공개 자료는 쟁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는 참고 자료로 쓰고, 실제 행사 범위는 변호인과의 개별 검토로 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조서 열람과 서명 단계도 행사 범위 결정과 연결됩니다. 서명 또는 기명날인은 조서 내용이 자신의 진술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부 의사를 밝힌 질문에 마치 답변한 것처럼 정리된 문장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각 페이지의 간인 여부도 함께 확인하여 조서의 동일성과 절차적 정확성을 점검합니다. 필요하면 조서 끝에 자신의 의견을 추가로 기재할 수도 있습니다.
Ⅴ. 결론
진술거부권은 전부 행사하거나 전혀 행사하지 않는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는 권리가 아니라, 특정 질문에 대해서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행사 사실만으로 불이익을 줄 수는 없지만 소명 기회를 함께 포기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객관적 자료의 유무, 기억의 명확성, 해석의 위험이라는 기준으로 나누어 대응 방식을 미리 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때 "기억나지 않는다"는 진술과 진술 거부를 구별해 두면 조서의 정확성과 진술의 신빙성을 함께 지킬 수 있습니다.
변호인은 신문 중에 피의자 대신 답변할 수 없으므로, 행사 범위에 관한 합의는 출석 전 상담에서 마쳐야 실제 조사에서 제대로 작동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특정 대응 방식이 유리하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적용 결과는 사건 시점의 법령과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개별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