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이 글은 상사·고용주·채용 권한자처럼 자신을 보호하거나 감독하는 사람에게 추행 피해를 입은 성인 피해자의 사건이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과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중 어느 조문으로 다뤄지는지를 검토합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인정되면 형법 강제추행이 우선 검토되고, 폭행·협박 없이 지위에서 나오는 위력이나 위계만 쓰였다면 성폭력처벌법 제10조가 적용되며, 같은 관계에서 일어난 간음에는 형법 제303조가 적용됩니다. 적용 범위는 성인 피해자 사건으로 한정하며,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위계·위력 범행은 성폭력처벌법의 별도 조문이 규율하므로 이 글에서 제외합니다.
Ⅰ. 쟁점의 소재
회식 뒤 상사가 인사 평가 권한을 언급하며 신체를 만졌거나, 거절하면 불이익이 따를 것으로 보이는 분위기에서 추행이 이루어진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피해자는 고소를 준비하면서 이 일이 어떤 죄로 다뤄지는지 묻게 됩니다. 두 법률의 일반 구조, 공소시효 특례, 흉기 휴대·친족관계에 따른 가중 조문은 이미 여러 글에서 다뤘습니다. 이 글은 보호·감독 관계에서 일어난 성범죄라는 한 유형에서 형법과 성폭력처벌법이 어떻게 나뉘는지만 다룹니다.
이 유형에서 혼란이 생기는 이유는 같은 관계에서도 행위에 따라 적용 법률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간음이면 형법 제303조가, 추행이면 성폭력처벌법 제10조가 적용됩니다. 여기에 폭행이나 협박이 더해지면 형법 제297조 강간이나 제298조 강제추행으로 옮겨 갑니다. 어느 조문이 적용되는지에 따라 법정형과 미수범 처벌 여부가 달라지고, 수사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실도 달라집니다.
적용 예시로 다음과 같은 가정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계약 연장 심사를 앞둔 직원에게 팀장이 단둘이 남은 회의실에서 갑자기 어깨와 허리를 끌어안았다면, 그 신체 접촉 자체가 유형력 행사로 평가되어 강제추행이 검토될 수 있습니다. 반면 팀장이 재계약 이야기를 꺼낸 뒤 손을 잡았고 직원이 불이익을 우려해 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체 접촉이 이어졌다면, 폭행·협박보다 지위에서 나오는 위력이 쟁점이 됩니다. 두 사례는 관계가 같아도 행위 당시의 수단이 달라 검토되는 조문이 갈립니다.
Ⅱ. 관련 법령과 기준
형법 제303조 제1항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로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한 사람을 처벌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은 같은 관계에서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을 처벌합니다. 형법 제298조는 관계와 상관없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경우를 처벌합니다. 세 조문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형법 제298조(강제추행): 수단은 폭행 또는 협박이며 보호·감독 관계는 요건이 아닙니다.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미수범은 형법 제300조에 따라 처벌됩니다.
- 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수단은 위계 또는 위력이며 보호·감독 관계가 요건입니다.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미수범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 형법 제303조 제1항(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수단과 관계 요건은 제10조와 같고 행위만 간음입니다.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미수범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형법 제303조와 성폭력처벌법 제10조의 법정형은 2018년 10월 개정으로 높아졌습니다. 형벌 법규는 행위 당시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개정 전에 일어난 행위라면 개정 전 법정형이 기준이 됩니다. 미수범의 경우 형법 제300조는 강간과 강제추행 등을 대상으로 할 뿐 제303조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5조도 제3조부터 제9조까지와 촬영물 관련 조문의 미수범만 처벌하며 제10조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사건에 폭행·협박과 지위에서 나오는 압박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때 검사는 강제추행을 주된 공소사실로,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을 예비적 공소사실로 함께 기재하여 기소할 수 있으며, 재판 과정에서 공소장 변경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사 초기에 통지받은 죄명이 최종 판단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Ⅲ. 해석: 폭행·협박과 위력의 경계
판례는 위력을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으로 보며, 유형적인지 무형적인지를 묻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경우도 포함한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위계는 상대방에게 오인·착각·부지를 일으키고 이를 이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평가나 재계약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그 영향력을 배경으로 추행했다면 명시적인 위협이 없어도 위력이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위력이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 판례는 행사한 세력의 내용과 정도, 행위자가 이용한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피해자가 느낀 위압감과 범행 당시의 정황을 종합하여 살펴야 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위력이 곧바로 부정되는 것은 아니며, 거절하기 어려웠던 구체적 사정이 함께 검토됩니다.
강제추행의 폭행·협박도 넓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판례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 행사가 있으면 힘의 대소강약을 묻지 않는다는 이른바 기습추행 법리를 유지해 왔습니다. 강제추행의 폭행·협박이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보던 종전 법리를 변경한 판례도 있습니다. 그 결과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 자체가 유형력 행사로 평가되면 상하관계가 있더라도 형법 제298조가 먼저 검토됩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0조는 폭행·협박을 인정하기 어렵지만 지위에 따른 압박은 분명한 사안에서 독자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보호·감독 관계는 정식 고용계약에 한정되지 않고 사실상 보호·감독을 받는 관계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채용 절차를 밟는 구직자와 채용 여부에 영향력을 가진 사람의 관계도 이에 해당한다고 본 판례가 있습니다. 반대로 보호·감독 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폭행·협박도 없다면, 성인 피해자 사건에서는 위력에 의한 추행만을 이유로 적용할 조문이 없을 수 있습니다. 형법 제303조와 성폭력처벌법 제10조는 모두 성폭력처벌법 제2조의 성폭력범죄에 포함되므로, 어느 조문이 적용되든 피해자 보호 절차의 적용 대상이 됩니다.
Ⅳ. 실무상 유의점과 준비 목록
고소장을 낼 때 피해자가 죄명을 직접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적으면 법률적 평가는 수사기관이 합니다. 다만 위에서 본 경계는 사실관계에 따라 갈리므로, 다음 사항을 미리 정리해 두면 조사 과정에서 진술의 초점이 분명해집니다.
- 관계 자료: 가해자의 직위와 함께 평가·채용·계약 연장에 관여하는 권한을 보여 주는 조직도, 근로계약서, 업무 지시 메시지가 해당됩니다.
- 행위 당시의 말과 행동: 신체를 붙잡거나 길을 막은 행동, 위협하는 발언, 피해자의 거절 표현을 시간 순서대로 적어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불이익의 암시: 인사·평가·재계약을 언급한 대화나 메시지는 위력 판단의 자료가 됩니다.
- 행위 일시: 2018년 10월 개정 전후 중 언제인지에 따라 적용 법정형이 달라집니다.
- 행위가 끝까지 이루어졌는지 여부: 시도에 그친 경우에는 폭행·협박의 개시 여부가 처벌 가능성을 가르므로 그 경위를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 사건 이후의 연락: 사과, 회유, 합의 요청이 담긴 메시지는 삭제하지 않고 원본 상태로 보존해야 합니다.
확인 절차는 다음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먼저 고소장에는 언제, 어디서, 어떤 말과 행동을 거쳐 신체 접촉에 이르렀는지를 시간 순서로 적고, 가해자의 권한을 보여 주는 자료를 첨부합니다. 다음으로 조사에서는 신체 접촉 직전에 붙잡거나 막는 행동이 먼저 있었는지, 인사상 불이익을 언급하는 말이 먼저 있었는지를 구분해 진술합니다. 이후 통지서에 적힌 죄명이 사실관계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피해자 변호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보완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회사 안의 성희롱 신고 절차와 형사 절차는 목적과 판단 기준이 다르므로, 회사 안의 조사 결과가 형사 사건에서 어느 조문이 적용되는지를 정하지는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정책을 맡은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피해상담소와 보호시설 등 지원 체계를 소관하고 있으므로, 법률 판단과 별도로 상담이 필요하면 이 체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누리집에서 여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 창구와 지역별 지원기관 정보를 안내하고 있으므로, 고소 전에 연계 기관을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Ⅴ. 결론
보호·감독 관계에서 일어난 추행은 먼저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면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이 적용되고, 법정형이 더 무거우며 미수범도 처벌됩니다. 폭행이나 협박 없이 지위에서 나오는 위력이나 위계만 쓰였다면 성폭력처벌법 제10조가 적용되고, 미수범은 처벌되지 않습니다. 같은 관계에서 간음이 이루어졌다면 형법 제303조가 적용됩니다.
피해자에게 필요한 일은 죄명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행위 당시의 수단, 일시, 행위가 끝까지 이루어졌는지를 증명할 자료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어느 조문이 적용될지는 수사와 재판에서 드러나는 사실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글은 일반적인 법령 해설로만 참고하시고 개별 사건은 법률 전문가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